라피네(Raffiné)는 단순한 무대 의상이 아니라, 무대 위의 이야기를 입히는 브랜드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은 벨리댄서이자 디자이너인 이지연 대표. 여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무대 의상에 매료되어 라피네를 설립한 그녀는, 댄서의 움직임과 감정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한 벌의 의상에 예술성과 기능성을 함께 녹여낸다.
국내에는 댄스의상 디자이너는 매우 생소한 직업이다. (사진=라피네의 이지연대표)
벨리댄스에서 디자인으로, 두 세계의 만남
이지연 대표는 “원래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고, 여성복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다니던 벨리댄스 수업에서 선생님의 의상을 리폼해드린 것이 계기가 되었죠.”라고 회상한다. 댄스스포츠 의상실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자신만의 브랜드를 시작하며 무대 의상이라는 새로운 길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그는 의상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로 ‘작품에 어울리는가’를 꼽는다.
“단순히 예쁘기만 한 옷이 아니라, 퍼포먼스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작품을 빛내줄 수 있어야 진정한 무대 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의 음악 분위기, 안무 구성, 무용수의 동선을 꼼꼼히 분석하고, 턴이나 동작에 따라 실루엣이 돋보이도록 디자인을 구상하는 것이 라피네의 기본 철학이다.
대화로 시작되는 맞춤 제작
맞춤 제작은 단순한 ‘의뢰’가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가장 먼저 하는 건 ‘충분한 대화’입니다. 이전에 입으셨던 의상의 장단점, 선호하는 스타일, 피하고 싶은 디테일까지 자세히 여쭙죠.”
고객의 말 속에 담긴 취향과 니즈를 캐치해내고, 때로는 댄서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함께 찾아간다. 그렇게 완성된 의상은 단순히 맞는 옷이 아닌, 무대 위에서 ‘그 사람’으로 보이게 해주는 표현의 도구가 된다.
댄스의상디자인은 아름다움과 실용성 두가지의 균형을 잘 맞춰야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사진=라피네 제작 의상을 착장한 벨리댄서)
잊을 수 없는 ‘꽃꽂이 군무복’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2018년 제작한 군무복을 꼽는다. 당시에는 스톤 장식이 대세였던 시절이지만, 그는 “빛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꽃 레이스를 하나하나 손으로 잘라 바느질하며 장식했어요. 스톤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 시도는 관객뿐 아니라 무용수들의 반응으로도 성공을 입증했고, 라피네의 이름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었다.
디자인과 니즈, 그 사이의 균형
무대 의상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디자이너의 감성과 댄서의 니즈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입니다.”
완전히 맡기겠다는 고객조차 결과물을 보면 아쉬움을 토로하고, 반대로 요청사항을 전부 반영했더니 디자인이 흐트러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대화를 반복하며, 가장 만족스러운 균형점을 찾아간다. “그 중간을 찾는 과정이 늘 도전이지만, 동시에 가장 보람된 일이죠.”
뮤지컬 마타하리의 주인공 옥주현씨의 벨리댄스 의상도 이지연대표의 작품이다 (사진=마타하리 뮤지컬 갈무리)
옷은 에너지를 표현하는 도구
이지연 대표는 무대 의상을 단순히 ‘입는 옷’이 아니라, 댄서의 존재감과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강력한 언어라고 말한다.
“댄서의 분위기, 작품의 감정, 음악의 흐름까지 의상이 함께 호흡해야 비로소 무대가 완성됩니다.”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우아함 속의 힘’과 ‘절제된 화려함’. 모든 장식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움직임의 흐름과 체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실루엣이 핵심이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동시에, 무용수에게 더욱 큰 자신감을 부여하는 것—바로 그것이 라피네의 디자인 철학이다.
이지연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전한다.
“라피네는 기성복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당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당신을 위해,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옷에 새깁니다.”
무대를 준비하는 댄서들에게, 라피네의 의상은 단순한 ‘옷’이 아니다. 무대 위의 또 다른 연기이자, 자신을 증명하는 하나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