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말보다 선명하고, 글보다 깊게 사람의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원초적인 표현 수단이다. 특히 사회적 억압과 정치적 불의가 지배하는 시대와 공간에서는, 춤은 침묵을 깨고 저항을 외치는 강력한 몸짓으로 기능해왔다. 전 세계의 역사 속에서 춤은 억눌린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 희망과 연대를 상징하는 수단이자, 금기된 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예술 형식이었다. 본 기획 기사에서는 중동 지역의 춤을 중심으로, 춤이 어떻게 정치적 저항과 사회적 연대의 매개체가 되어왔는지를 살펴본다.

Book of the Dead with offerings made to Osiris


고대 문명의 몸짓: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의 춤

중동의 춤은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기록되어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신전 벽화와 점토판에 제사 의식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서도 여사제들이 의식을 행하며 춤추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 춤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수단이자, 풍요와 전쟁, 죽음을 앞둔 주술적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집트 룩소르의 신전 벽화에서 드러나는 여성 무용수의 반복적인 손동작과 발놀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당시 사회가 몸의 리듬과 신성함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현대의 오리엔탈 무용 또한 이 시기의 의식적 춤 형식에서 일정 부분 영감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Post-Islamic Transformations


이슬람 이후의 변화: 수피즘과 궁정 문화의 분기점

7세기 이후 이슬람교의 확산은 중동 지역 춤의 존재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슬람 율법은 공공에서의 음악과 춤에 제한을 두었으나, 동시에 궁정 문화에서는 오히려 고도로 세련된 춤 예술이 발전했다. 하렘에서 여성 무용수들이 연회와 연극 공연을 담당하며 '라크스 샤르키(Raqs Sharqi)'와 같은 형식이 정립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수피즘의 존재이다.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세마(Sema)' 의식을 통해 회전 춤, 즉 세마 무용을 추며 신과의 합일을 추구했다. 메블라나 루미의 철학에서 유래한 이 춤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영혼의 순례였다. 터키의 세마 댄서는 오늘날까지도 메블라나의 가르침을 따라, 고요하지만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몸으로 전하고 있다.

Taheya Carioca (출처:

벨리댄스의 오해와 실상: 오리엔탈리즘과 젠더의 교차점

19세기 말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벨리댄스(Belly Dance)'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라크스 샤르키'는 사실 중동 사회 내부에서는 다양한 해석과 논란의 대상이었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은 이 춤을 성적 이미지로 소비했고, 이로 인해 중동의 무용수들은 예술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평가와 검열을 받아야 했다.

이집트의 전설적인 무용가 타히야 카리오카(Tahia Carioca)와 사마라(Samahra)는 이 춤을 고급 예술로 끌어올린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타히야는 1950년대 이집트 영화에서 활약하며 춤을 사회 비판의 언어로도 활용했다. 그녀는 때로는 검열을 받았고, 때로는 대중에게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예술과 정치의 교차점에서 싸웠다.

사이디 춤 (출처 : artemisyadancewear)


지역별 전통 춤의 다양성과 그 속의 세계관

중동은 단일한 문화권이 아니다. 이집트 상류 지역에서는 '사이다(Saidi)'라 불리는 지팡이 춤이 남성성과 농경 사회의 질서를 상징하며, 레바논과 시리아, 팔레스타인에서는 다브케(Dabke)가 공동체의 연대와 결속을 상징한다. 걸프 지역의 할리쥐(Khaleeji)는 머리카락을 흔드는 독특한 여성 중심의 움직임으로,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감각을 표현한다.

특히 이란의 전통 춤은 종교적 통제로 인해 위축되었지만, 디아스포라 여성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고전 페르시아 무용을 복원하고 새로운 감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들이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인 샤흐라자드 아흐마디(Shahrzad Ahmadie)는 이란 고전 무용의 우아한 팔 동작과 미세한 표정 변화를 현대적인 안무에 결합시켜 중동 무용의 또 다른 지평을 열고 있다.

Houriah Al Far, State of Palestine, 2022 (출처 : UNESCO)

다브케와 팔레스타인의 저항 춤

팔레스타인의 다브케는 단순한 민속춤을 넘어, 정치적 저항의 몸짓으로 기능해왔다. 줄을 맞춰 발을 구르고 박자를 맞추는 이 춤은 공동체의 일체감을 상징할 뿐 아니라, 점령에 맞선 민족적 단결의 퍼포먼스로 활용되어 왔다. 시위 현장에서, 결혼식에서, 페스티벌에서 다브케는 늘 존재했고, 이는 곧 팔레스타인의 존재 선언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현대무용단 엘푸눈(El-Funoun)의 활동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전통 다브케를 기반으로 현대무용적 요소를 가미하여 망명, 귀환, 폭력, 기억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전 세계 예술제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쿠르드족 춤 (출처 : Pinterest)


춤과 정치, 몸의 언어로 말하다

춤은 언제나 정치를 피해갈 수 없는 예술이었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서 탈춤과 율동이 시위 현장을 밝히듯, 중동에서도 춤은 검열과 감시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의 감정과 신념을 움직였다. 쿠르드족의 춤은 억압받은 언어와 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문화적 생존 수단이었고, 수피춤은 외부로 향하지 않고 내면으로 향한 가장 정치적인 침묵의 퍼포먼스였다.

또한 현대의 디지털 환경은 춤의 저항성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펼쳐지는 중동 청년들의 댄스 챌린지는 전통과 현대, 검열과 표현 사이에서 또 다른 방식의 사회 참여를 가능케 한다.

몸, 역사를 쓰다

중동의 춤은 단지 움직임이 아니다. 그것은 땅과 하늘, 신과 인간, 억압과 해방,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긴장을 감당해온 수천 년의 기록이다. 중동 무용수들의 몸은 노래하지 못한 이야기, 전하지 못한 진실, 지워지려는 기억을 담아낸 생생한 언어다.

춤은 말하지 않아도 말이 되는 예술이며, 침묵을 뚫고 나오는 몸의 목소리다. 그것은 살아 있는 역사이며, 동시에 다음 세대로 이어질 자유의 리듬이다.